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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식민지 정책[패스티브/하나님의교회] 본문

겸손[하나님의교회]

이상한 식민지 정책[패스티브/하나님의교회]

사랑가득한 2018. 3. 7. 22:49


식민지역사를 통해 사단의역사를 알고 바로 알아야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죠~~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고 복받도록 합시다.



식민지 역사


식민지(植民地, colony)란 한 나라의 주권이 다른 나라에 넘어간 상태, 즉 지배를 받는 지역을 가리킨다. 원래 식민지의 어원은 라틴어의 ‘콜로니아’인데 이는 ‘민족이나 국민의 일부가 오래 거주하던 땅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건설한 지역’을 뜻한다.


고대에는 이주식민지(移住植民地)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새로운 땅에서 토지를 개간하고 경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B.C. 8~6세기경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이 지중해 연안 각지에 개척한 식민지, 중국의 화교(華僑)가 만든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의 중국 이주민사회, 신라인들이 중국의 동해안 일대에 만든 신라방(新羅坊)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타국에 지배되어 착취를 당하는 지역’으로 그 개념이 바뀌었다. 식민지의 형태가 착취(搾取)로 바뀐 건 15세기 말이었다. 1520년 포르투갈은 인도양의 무역을 독점했고, 신대륙에서는 브라질을,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을 복종시켰다. 17~18세기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무역과 항해의 독점, 식민지의 쟁탈을 둘러싸고 맹렬하게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이 일어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다.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 항쟁, 중국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 등이 그 예다. 이 시기에 한국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주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이에 국민들은 일본의 지배에 맞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


일본은 조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식민지 정책으로 무단정치와 문화정치를 펼쳤다. 무단정치는 무력에 의한 강경책으로 ‘채찍’에 해당한다. 일본은 조선의 주권을 빼앗는 것에 반대하는 의병 전쟁이나 애국 계몽 운동을 억압하는 등 일본에게 협조하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가 고문하거나 죽이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 회유책으로 문화정치라는 ‘당근’을 사용했다. 문화정치는 조선의 문화를 발달시킨다는 명목으로 내세웠다. 교육, 산업, 교통행정의 개선과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인정하고 조선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본질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친일파 세력을 양성시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채찍은 조선을 흔들지 못했지만 당근은 했다. 일본의 무단정치 당시, 조선인은 굴복하지 않고 단결하여 3.1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문화정치 때는 오히려 친일파가 증가, 민족이 분열됐다. 문화정치는 조선인을 골수까지 일본인으로 만드는 고도의 식민지 정책이었던 것이다.



사단의 식민지 정책


1683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이단심문

교회 안에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다.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안식일을 규례로 지킬 것’과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것’을 지시하셨다. 모세의 옛 언약을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변역하신 것이다(누가복음 4:16, 마태복음 26:19~28).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뜻을 굳게 지키던 믿음의 선진들이 운명하자, 새 언약 진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단정치와 문화정치가 시작됐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세력을 가리켜 ‘사단’이라 알려주고 있다(요한1서 3:4~8).


무단정치는 64년 로마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하면서 시작됐다. 로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그리스도교 근절을 위한 국법을 반포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가 죄목이 돼 처벌됐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그들은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문화정치 때는 달랐다. 문화정치는 그리스도인을 인정하고 자유를 준다는 명목으로 진행됐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칙령(Edict of Milan)을 반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했다.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세금감면 등 각종 특혜를 주었고 교회 설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궁극적 본질은 새 언약의 절기 대신 이교의 교리를 따르게 하는 데 있었다.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 날(일요일)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라고 명명했다. ···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교회사핸드북, 생명의말씀사)


콘스탄티누스의 당근정책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여러 특권을 교회에 제시하며 유월절 대신 태양신 숭배일인 크리스마스를, 안식일 대신 일요일 예배를 지키도록 종용했다. 당시 로마가톨릭은 황제의 명대로 그리스도의 모든 계명을 버리고 사람이 만든 계명을 지켰다. 그리고 성경대로 행하는 자들을 마녀로 간주해 종교재판(inquisition)에서 악랄하게 목숨을 빼앗았다.


결과적으로 사단의 문화정치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빼앗고 껍데기만 남게 만든, 괴이한 정책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까지 사람이 만든 계명을 지키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은 끊임없는 독립투지와 독립운동에 의해 이뤄졌다. 영적인 독립도 마찬가지다. 지금, 종교개혁자들이 찾지 못한 새 언약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 종교개혁운동에 열심을 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성도들이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들과 함께 새 언약 진리에 대한 바른 소리를 내고, 간교한 사단의 정책에서 벗어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